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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에게 듣다

동아일보 전승훈 기자(부장)의 크루즈 여행 이야기

조회수
250
등록일
2023-07-25 11:15
https://youtu.be/WMVP-uXm2RI




크루즈 여행의 계절이 돌아왔다. 코로나19로 발이 묶였던 국내 크루즈 여행이 3년 8개월 만에 부산항, 속초항 등지에서 본격 시작됐다. 그런가하면 홍해와 지중해 등 해외 크루즈 여행 상품도 본격적으로 손님을 모집하고 있다. 크루즈는 배라기 보다는 바다 위에 떠나니는 거대한 리조트. 선내에서 숙식은 물론 다양한 이벤트도 즐길 수 있는 크루즈 여행은 가족과 친지, 동창과 함께라면 더욱 즐거운 단체 여행의 백미다.

부산항에서 일본 규슈 지방을 여행하는 코스타세레나호의 선상에서 감상하는 대한해협의 일출. 크루즈 갑판 위의 조깅코스에서 한 커플이 떠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 아침 조깅을 즐기고 있다.

●크루즈 선내에서 100배 즐기기
지난달 초 KTX 부산역에서 구름다리를 건너면 10분만에 도착하는 부산항국제여객선터미널. 1700여 명의 승객과 1400명의 승무원이 탄 대형 크루즈선 ‘코스타 세레나호’가 정박해 있는 모습은 상상을 초월했다. 배라기 보다는 11층 높이의 호텔 수십채가 연결돼 있는 바다 위의 리조트를 연상케했다. 승객들이 승선 수속을 마치자 크루즈선은 부산항대교 아래를 미끄러지듯 통과하며 출항을 시작했다.

코로나19로 크루즈 운항이 중단된지 3년8개월여 만에 다시 시작된 국내 항구에서 출발하는 전세 크루즈선 여행이었다. 부산항에서 출발한 이 배는 일본 규슈(九州) 지방의 나가사키(長崎)와 구마모토(熊本)에서 기항지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3박4일짜리 코스였다.

크루즈 여행의 특징은 직접 운전하거나 대중교통을 타고 관광지를 찾아갈 필요도 없고, 숙소를 고르고, 식당을 찾아 헤맬 필요도 없다. 갑판 위에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깅을 하고, 밤에는 달과 별을 구경하기도 한다. 바다가 보이는 야외 수영장에서 설치돼 있는 워터슬라이드를 타고 물 속으로 풍덩 빠지는 것도 이색적인 경험이다.

크루즈 여행에 온 사람들은 부모님 환갑, 칠순을 맞아 형제, 자매가족끼리 온 사람도 있고, 동창회와 향우회, 동호회원들끼리 단체로 여행을 온 사람들이 많았다. 세 형제가 가족들과 함께 여행 온 김현수 씨(52)는 “가족끼리 여행을 해봤어도 이렇게 많은 대화를 한 것은 처음”이라며 “한 배를 타고 여유있게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크루즈 여행의 묘미”라고 말했다.

11만4500톤 급의 코스타세레나호는 전장이 289.6m. 최대 3617명의 승객에 1200여 명의 스태프를 포함해 최대 4800명까지 태울 수 있다. 배 안에는 대극장과 카지노, 면세점, 마사지숍, 8개의 수영장과 자쿠지, 8개의 레스토랑과 스낵바, 10개의 바와 라운지가 있는 거대한 리조트다.

특히 승객들이 기항지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시간부터 선내에서의 이벤트는 하이라이트를 맞는다. 승객들은 선내 곳곳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곁들인 정찬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저녁을 먹을 즈음, 배는 벌써부터 출항을 시작한다. 내일 새로운 기항지 관광을 할 도시로 밤새 이동하기 위해서다.

저녁을 먹자마자 배가 떠나는 이유는 또 있다. 항구에서 벗어나 공해상으로 배가 나가게 되면 면세점과 카지노의 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기항지 국가와 맺은 협약 때문에 배가 항구에 정박하고 있을 때에는 면세점과 카지노는 문을 열 수 없다. 크루즈 안의 면세점에는 보석, 시계, 화장품, 가방 등 럭셔리한 브랜드 제품 쇼핑객으로 가득찬다. 이슬람국가를 여행할 때 가장 큰 제약은 술을 마시는 걸 금지하거나 제약이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크루즈 여행을 선택하기도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요르단 등의 이슬람국가들을 여행하는 홍해크루즈의 경우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는 술을 판매할 수 없다. 그러나 공해상으로 배가 빠져나오면 해당 국가의 법률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술을 판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공연과 댄스, 타로점이 있는 파티
크루즈 선에서 저녁을 먹고 쇼핑까지 마쳤다면, 이제는 화려한 드레스로 갈아 입을 차례다. 부산항에서 출발해서 일본 규슈 지역을 다녀오는 크루즈선이라 승객의 90% 이상이 한국인 관광객들인 전세 크루즈선이었음에도, 저녁시간 대 수많은 여성들이 세련된 드레스 차림으로 갈아 입고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남성들은 아직까지 아웃도어 차림으로 저녁 파티에 나타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여성들은 미리 이브닝 드레스를 준비해 와 파티 분위기를 한껏 냈다.

저녁을 먹고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대극장이다. 3,4,5층까지 이어지는 대극장에서는 매일 밤 오후 8시반부터 1시간 가량 메인 공연이 펼쳐진다. 러시아와 동유럽 출신 남녀 무용수들이 펼치는 아크로바틱 댄스, 서커스와 마술, 뮤지컬과 콘서트 공연에 사람들은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마지막 날에는 이탈리아인 선장과 스태프들이 샴페인잔을 들고 승객들에게 환송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는 파티를 연다.

대극장 공연이 끝나면 크루즈선 곳곳에서 파티가 본격적으로 이어진다.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전국에서 온 라틴 댄스동호회 회원들이었다.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회원들은 메인 홀 에서 자리를 잡았고, 필리핀, 말레이시아 출신 악단이 현장에서 직접 연주하는 음악에 맞춰 왈츠부터 바차타, 탱고까지 날아갈 듯 가볍게 댄스를 선보였다.

“라틴댄스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크루즈 선에서 춤을 추는 것은 평생의 로망입니다. 취미로 댄스를 배우던 사람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화려한 선상무대에서 춤을 추는 것은 가슴 벅찬 순간이죠. 언젠가 크루즈선에서 춤을 추기 위해 댄스를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임상용 씨는 10여 년 전부터 동호회원들과 함께 지중해, 북유럽, 알래스카, 멕시코 등을 다녀오는 크루즈 여행을 주최해왔다고 한다. 그는 서양 관광객들이 많이 타는 지중해, 홍해, 유럽과 미주의 장거리 크루즈선에서는 밤마다 댄스파티가 열리기 때문에, 크루즈 관광객에게 춤추기 능력은 여행의 기본적인 준비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댄스 동호회원들과 함께 여행하다보면 외국인들과도 댄스로 교류하고, 자연스럽게 소통하면서 여행은 더욱 즐거워진다”고 말했다.

선상의 다른 쪽의 무대에서는 부산에서 온 노래강사가 이끌고 온 동호회원 40~50명이 노래자랑 대회를 열었다. 그런가 하면 한쪽 테이블에는 ‘타로와 함께 하는 크루즈 여행’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타로 동호회원들이 승객들에게 1만원을 받고 상담을 해주며 함께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기자도 타로 점이 처음이라 한번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양력생일로 별자리를 찾고, 카드를 3장을 뽑았다. 우연히 뽑은 카드에 나온 그림들이 현재의 내가 처한 상황과 묘하게 연결되고, 특히 마지막 카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의 실마리를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아 신기했다. 타로카드는 미래의 운세를 점친다기 보다는, 현재의 내 고민을 들어주고 잘 설명해주는 심리상담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친구끼리 크루즈 여행을 왔다면? 갑판부터 수영장 주변, 홀 곳곳에 있는 바를 돌며 한 잔씩 하는 경험도 나쁘지 않다. 한 잔 한 잔 주문할 경우 맥주와 와인, 위스키 한잔이 5달러 정도하지만, 35달러 정도를 내면 3박4일간 음료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크루즈 여행은 중장년층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젊은 승객들도 디스코텍이나 바에서 밤늦게까지 모임을 가지며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힐링의 크루즈 여행
크루즈선에서는 이렇게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구마모토에서 밤에 출발해 부산항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날 아침, 기항지 관광이 없을 때에는 선내 곳곳에서는 요가 레슨과 건강한 걸음걸이, 전문의와 함께 하는 건강강좌가 펼쳐진다. 또한 부동산 전문가가 해설해주는 부동산 투자 특강도 펼쳐지기도 한다. 이렇게 오늘 선내에서 어떤 파티와 공연, 강좌 등 이벤트가 열리는지 알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 객실 문 앞에 꽂히는 ‘크루즈 신문’을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참석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밑줄 쫙~.

크루즈 여행을 홀로 왔거나 커플끼리만 와서 서먹서먹하다면? 이들을 위해 분위기를 띄워주고, 주변과 함께 어울리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애니메이터(Animator)’다. 이탈리아, 러시아, 중국, 인도시아, 필리핀, 호주 등 세계 각국에서 온 다국적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메인 로비에서 환영파티 때 춤을 추기도 하고, 밤마다 화려한 의상으로 갈아 입고 승객들과 사진을 찍어준다. 애니메이터 중에는 어린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사람들도 있다. 낮에 기항지 관광에 가지 못하는 유아나, 저녁에 아이들을 돌봐주는 사람들이다. 아이들은 전용공간에서 게임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유아 전용풀에서 물놀이를 하면서 애니메이터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크루즈 선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공간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사우나다. 한국, 일본, 중국, 대만, 싱가폴, 태국 등 아시아 시장에서 크루즈 여행을 확대해온 코스타세레나호는 9층과 10층에 대형 스파시설을 갖추고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실내자전거와 러닝머신을 탈 수 있는 피트니스 센터 옆에는 대형 자쿠지 풀이 있고, 일본식, 중국식 건식사우나 시설과 핀란드식 습식사우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타일이 붙어 있는 따뜻한 돌로 된 릴렉스 의자에 누워서 가운을 입고 사우나를 할 수 있는 데, 유리창을 통해 바다에 떠 있는 섬들 사이로 햇살이 부서진다.

마사지의 경우에는 1회 받는데 200달러 가량하기 때문에 손님이 많지 않다. 그런데 사우나는 사흘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패스가 99달러다. 객실의 샤워실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호텔보다는 좁은 부스에서 간단히 샤워를 해야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사우나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패스를 끊은 후로 크루즈에서의 삶이 달라졌다.

먼저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사우나로 달려간다. 바다를 바라보며 피트니스센터에서 러닝머신으로 간단하게 몸을 푼다. 물론 본격적인 운동을 하고자 함은 아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런닝머신을 뛰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기항지 여행을 마치고 저녁에 돌아온 후에도 바로 사우나로 향한다.

여행의 피로를 넓은 자쿠지 풀에서 수압으로 근육마사지로 풀어낸다. 하얀색 수건으로 된 가운을 입고 사우나에 가서 따뜻한 타일이 붙어 있는 돌의자에 누워 바다를 바라본다. 스르르 감기는 눈. 적당히 따뜻한 온도에 땀이난다.

한층 더 올라가면 마사지실 밖으로는 카페처럼 차를 마시는 공간이 있다. 티백에 담긴 녹차와 홍차, 꽃차 중에 하나를 골라 컵에 뜨거운 물을 따르고 차를 우려낸다. 릴렉스 의자 위에서 발을 뻗고 창 밖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차를 마신다. 크루즈 여행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힐링의 순간이었다.